103위 한국 순교 성인

한국 교회는 많은 순교자들 중에서 103명을 성인으로 모시고 있다. 먼저 79명이 1925년에 시복되었고, 24명이 1968년에 시복되었다. 79명은 1939년과 1846년의 두 박해 때 순교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1939년 이전 초창기의 순교자들과 1866년 이후의 순교자들은 복자가 되지 못했다. 심사에서 탈락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복자 후보자 대상에 오르지 못했던 것이다. 한국 교회가 시성 운동과 동시에 시복 운동을 추진하고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이 시성 운동은 교황 성하의 특별한 배려로 실현 단계에 이르러 역사적인 한국교회 창설 200주년을 계기고 103명의 복자가 모두 성인품에 오르게 되었다. 103위 성인을 크게 성직자와 평신도로 나누면 성직자가 11명 이고 평신도가 92명이다. 평신도가 절대적으로 많은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라 하겠다.

성직자 중에는 외국인이 10명이고, 한국인이 1명이다. 외국인은 모두 프랑스 사람, 즉 파리외방전도회소속 선교사들인데 그 중에 주교가 3명 신부가 7명이다.

한국인 성직자란 다름 아닌 김 대건(안드레아) 신부이다. 그는 한국인으로서 최초의 신부일 뿐더러 순교하는 영예까지 차지한 분이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성인 중에서 평신도가 절대적으로 많은 것이 특징이라면 92명의 평신도 중 반이 넘는 47명이 여자라는 것도 특징이 아닐 수 없다. 그 중에는 주부가 12명, 과부가 17명, 동정녀가 18명이다. 79세의 할머니가 있는가 하면 13세의 어린 처녀도 포함되어있다.

남자 평신도의 경우에도 나이, 신분, 직업 등 각계각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3세의 소년이 있는가 하면 72세의 고령자도 있다. 양반도 있고 상민도 있다. 승지랑 고관에서부터 역관, 군인, 상인, 직공, 하인 등 직업면에서도 다양하다. 선교사들을 대신하여 교회를 지키고 또는 선교사들 곁에서 교회를 위해 헌신한 회장과 복사가 많은 것도 또 다른 특징이라 하겠다. 부부, 부자, 부녀, 모자, 모녀, 형제, 자매 등이 같이 순교한 가족도 많다. 개중에는 한가족에서 5명의 순교자가 나온 집안도 있다. 지난 9월 27일 교황 성하께서 친히 한국 복자 103명의 시성을 확정한 추기경회에서 단테 (Dante) 변호사는 한국 순교 성인에 대해 이러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장기간의 무서운 옥고도, 잔인한 고문도, 목마름과 굶주림도, 무서운 형벌도, 모성애도, 자녀의 효성심도, 부부의 사랑도, 노소를 막론한 이 순교자들의 확고부동함을 넘어뜨리지 못했읍니다. 그들의 이같은 신앙을 굴복시키지 못한 것은 세상의 승리자요, 참된 생명의 길인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러한 순교자들을 낳은 한국교회는, 한국교회 탄생 200주년을 계기로 탄생한 한국에 103위 성인들이 그들을 사랑하는 모든이로 부터 공경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